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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S

[현장] 도시서 리튬·니켈 캔다…폐배터리 재활용 ‘준비된 승자’

국내 유일 폐배터리 재활용 일괄공정 갖춰
2025년 뒤 쏟아질 전기차 폐배터리에 관심 커져
용매추출 방식 ‘습식 공정’ 11년 전 양산 성공
폐배터리서 리튬·니켈·코발트·망간 뽑아내
수명 다한 폐배터리 15일이면 원료로 변신
“다 알려진 기술…양산 성공한 건 우리뿐”

 

 

지난 7일 성일하이텍 폐배터리 해체공정 한쪽에 보관된 원통형 폐배터리 모습. 구멍을 뚫어 방전시켰다.

전력이 남아있을 경우 화재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해체하기 전 방전 과정을 거친다.

 

 

“재활용 원료라고 봐주는 거 없습니다. 폐배터리에서 나온 원료여서 품질이 떨어질 거라고 보는 분들이 있는데, 스펙(고객 요구조건)이 안 맞으면 고객이 받아줄 리가 있겠습니까. 일반 광산에서 캐낸 원료와 동일한 품질의 도시광산 원료입니다. 판매가도 국제 시세대로 받습니다. 재활용 가격이 따로 있지 않아요.”(정철원 성일하이텍 제조총괄)

폐배터리 재활용 기업 성일하이텍은 최근 얼어붙은 증권시장에서 성공적으로 주식시장에 상장해 주목받는 회사다. 상장 뒤 주가도 급등세다. 주가는 8일 기준 15만1200원으로, 공모가(5만원)의 3배가 됐다. 그간 만나온 배터리업계 관계자마다 “국내에서 성일하이텍을 따라갈 업체가 없다”고 말했다. 직접 확인해보고 싶어 지난 7일 오전 전라북도 군산 국가산업단지 내 성일하이텍 공장을 찾았다.

성일하이텍은 국내에서 유일하게 폐배터리 재활용 일괄공정을 보유한 회사다. 폐배터리에서 순도 99.99%의 배터리 원료를 뽑아내는 전 과정을 수행한다.

 

성일하이텍 작업자가 부서진 ‘전기차용 파우치 배터리 모듈’을 배터리셀과 플라스틱 부품으로 분류하고 있다.

왼쪽 작업자가 배터리 모듈을 기계 안에 넣으면 철판이 내려와 모듈에 압력을 가해 배터리를 감싼 플라스틱을 부숴 분리하기 편하게 만들어 준다.

 

 

공장을 둘러보기에 앞서 폐배터리 재활용 과정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문과 출신 기자를 위해 생산 최종 책임자 정철원 전무의 ‘족집게 과외’가 시작됐다. 폐배터리 재활용 공정은 물리적인 ‘전처리 공정’과 화학적인 ‘후처리 공정’으로 나뉜다. 폐배터리에 남아있는 전력을 방전시키고 해체한 뒤 불순물을 제거한 양극재 분말 ‘블랙 파우더’를 만드는 것이 전처리 공정이다. 양극재는 배터리 성능을 좌우하는 핵심 소재로, 리튬에 니켈·코발트·망간이 화학적으로 결합한 상태다. 전처리 과정은 누구나 쉽게 따라 할 수 있는 기술이라고 한다.

이 회사의 핵심 기술은 원료들이 화학적으로 결합된 블랙파우더를 분리해내는 후공정이다. 망간·코발트·니켈·리튬 순으로 뽑아내는데, ‘용매추출 방식을 사용한 습식 공정’을 사용한다. 먼저 블랙파우더를 침출 약물에 녹여낸다. 블랙파우더가 녹은 약물에 회사가 개발한 망간용 추출제를 넣고 섞어준다. 이 과정에서 망간이 추출제에 붙는다. 시간이 흐르면 물과 기름이 위아래로 분리되듯, 망간이 녹아든 추출제와 코발트·니켈·리튬이 녹아 남아있는 약물이 분리된다. 망간을 품은 추출제만 빼낸다. 각 원료용 추출제를 이용해 이 순서를 반복하면 배터리 원료를 차례대로 분리해낼 수 있다.

 

열처리·파분쇄를 거친 블랙파우더가 자루에 담기고 있다. 폐배터리 재활용 전처리 과정의 마지막 공정이다.

 

 

정 전무는 배터리 원료의 성질이 유사해 순도 높게 분리하는 일이 쉽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초기 양극재의 기본 구성은 리튬+코발트였는데, 연구자들이 코발트와 성질이 유사한 니켈·망간을 함께 쓰면 성능이 좋아진다는 걸 알아냈다. 현재 리튬+코발트·니켈·망간이 전기차 배터리 양극재의 기본이 됐다”며 “친한 친구를 쉽게 떼어놓기 어렵듯이, 3개 원료의 성질이 유사한 만큼 깔끔하게 분리해내기가 어렵다”고 말했다.

정 전무의 특별 과외가 끝난 뒤 직접 재활용 과정을 보기 위해 공장으로 향했다. 먼저 해체공정을 둘러봤다. 파우치 배터리 모듈을 해체 기계에 넣자 배터리를 감싼 플라스틱이 쩍하고 갈라졌다. 이어 작업자가 배터리와 플라스틱을 분리해 자루에 담았다. 원통형·각형 등 폐배터리 각자의 다양한 모양과 크기에 따른 적합한 방식으로 해체되고 있었다. 공장 한쪽에는 폐배터리를 담은 자루가 수북하게 쌓여있었다. 정 전무는 “배터리사, 배터리 소재사에서 나오는 불량품뿐만 아니라 폐차장, 재활용품 수거 업체 등 가져올 수 있는 모든 곳에서 (폐배터리를) 구해오는데, 이 능력도 중요한 경쟁력 가운데 하나”라고 말했다. 이후 열처리·파분쇄 과정을 거치면 고운 입자의 블랙파우더가 만들어지면서 전처리 과정이 마무리된다.

 

성일하이텍의 용매추출을 이용하는 습식공정 모습. 액체를 다루는 공정으로 탱크와 파이프만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다음으로 둘러본 곳은 이 회사가 자랑하는 후처리 공정이다. 하지만 액체를 다루는 자동화 공정인 만큼 보이는 건 거대한 탱크와 파이프뿐이었다. 습식공정이 진행되는 과정을 직접 눈으로 확인할 순 없었다. 다행히 추출제를 건조한 분말 원료는 직접 만져볼 수 있었다. 앞서 해체 공정에서 본 녹슨 배터리가 고운 입자의 원료로 변신해 있었다. 폐배터리에서 원료를 모두 뽑아내는데 걸리는 시간은 15일 정도다.

성일하이텍은 원료가 녹아든 추출제를 액체상태로 바로 팔거나 건조해 분말로 판매한다. 구매한 원료로 전구체(양극재의 전 단계)를 제조하는 고객들은 분말을 사들여 용액에 녹여 사용하는데, 액체상태로 사들이면 이 과정을 건너뛸 수 있다. 다만, 액체는 분말과 비교해 농축 함량이 적고 무거워서 수출에 부적합하다고 한다. 액체 원료는 국내에만, 분말 원료는 국내외에 모두 납품된다.

 

폐배터리 재활용 전 공정을 거처 나온 원료. 왼쪽 첫번째 사진부터 시계방향으로 코발트·니켈·리튬·망간.

 

 

2025년 이후에는 전기차 폐배터리가 본격적으로 쏟아져 나온다. 시장조사기관 에스엔이(SNE)리서치에 따르면, 폐배터리 재활용 시장은 2040년 약 68조원 규모로 성장할 전망이다. 원료 수요가 공급을 초과할 것으로 예상되면서 수급이 불안정해지고 미국과 유럽 등 주요 전기차 시장에서 폐배터리 원료 사용 의무화 규제도 도입될 예정이어서다. 이에 따라 대기업들이 앞다퉈 뛰어들고 있다. 성일하이텍이 곧 따라잡히지 않을까. 정 전무는 자신있게 말했다. “사실 습식 공정은 학계가 수십 년 전부터 개발해둔 기술이다. 하지만 365일 쉬지 않고 대량으로 원료를 생산하는 양산에 성공한 건 우리가 유일하다.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2011년 습식 공정을 지었다. 과거 대기업들도 우수인력과 자본을 투입해 동일한 기술을 연구하고 시험 설비를 운영했지만 양산에 실패했다. 지금 시작해도 4∼5년 뒤에야 가능할 텐데, 그 기간만큼 우리도 생산량을 늘리고 공정기술을 향상하고 비용을 절감해나가면서 격차를 유지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