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값비싼 배터리 원자재를 추출하라 ‘폐배터리 리사이클링’에 꽂힌 삼성·LG

글로벌 전기차 관련 기업마다 폐배터리 리사이클링 사업에 사활을 걸고 있다. 전기차 시장이 급성장하는 가운데 핵심 부품인 배터리 원료 가격이 천정부지로 치솟으면서 기업들은 폐배터리에서 자원을 회수하거나 다른 용도로 활용하는 사업에 엄청난 관심을 보인다.

 

LG에너지솔루션 오창공장에서 폐배터리 재활용 ESS를 활용해 전기차를 충전하고 있다. (LG에너지솔루션 제공)

 

 

▶삼성, 성일하이텍 지분 늘려

▷폐배터리 생태계 확보 포석

폐배터리는 크게 재활용(Recycle)과 재사용(Reuse)으로 나뉜다.

재활용은 폐배터리에서 값비싼 원자재를 추출해 활용하는 방식이다. 폐배터리를 방전시킨 후 음극, 양극, 분리막 등으로 분해해 리튬, 니켈, 코발트, 망간, 구리 등을 회수한다. 이에 비해 재사용은 폐배터리 상태를 점검한 뒤 ESS(에너지 저장 장치) 등 다른 용도로 사용하는 방식이다. 전기차에 쓰이는 리튬이온 배터리는 에너지 밀도가 높아 성능이 떨어지더라도 다른 분야에 사용 가능하다.

삼성그룹은 일찌감치 폐배터리 재활용 사업에 주목했다. 국내 폐배터리 자원 회수 업체인 성일하이텍 지분을 계속 늘리는 중이다. 삼성물산이 2009년 이 회사 지분 6.33%를 사들인 데 이어 삼성벤처투자를 통해 지난해 지분 11.5%를 추가로 매입했다.

성일하이텍은 폐배터리에서 니켈, 코발트, 리튬 등 핵심 원료를 추출하는 회사로 국내 1위 점유율을 자랑한다. 전기차와 ESS에서 사용된 리튬이온 전지가 주요 재활용 대상이다. 국내 군산공장뿐 아니라 중국, 인도, 헝가리, 말레이시아 등에 글로벌 재활용 거점을 뒀다.

삼성 계열사들이 성일하이텍 투자를 늘린 데는 이유가 있다. 폐배터리 생태계를 확보하기 위한 목적이 크다.

과정은 이렇다. 전기차 배터리 생산 업체인 삼성SDI가 배터리셀 제조 중에 발생하는 폐배터리를 먼저 성일하이텍에 공급한다. 성일하이텍이 폐배터리에서 핵심 원료를 추출하고, 삼성물산이 이 원료를 수요처에 판매하는 구조다. 삼성SDI는 성일하이텍의 최대 고객사기도 하다.

성일하이텍은 2019년과 2020년 영업손실을 냈지만 지난해 137억원 영업이익을 올려 흑자전환했다. 지난해 매출은 1385억원으로 2020년 대비 두 배 이상 증가할 정도로 성장세가 가파르다. 장정훈 삼성증권 애널리스트는 “성일하이텍은 유럽 시장 공략을 위해 지난해 헝가리에 연간 5만t 규모 폐배터리 리사이클링 2공장을 완공했다. 1공장까지 합하면 연간 재활용 규모만 유럽 최대인 6만t 수준이다. 2030년 매출 1조원을 목표로 성장세가 지속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삼성의 ‘러브콜’ 덕에 몸값이 높아진 성일하이텍은 국내 폐배터리 기업 중 최초로 IPO(기업공개)에 나섰다. 지난해 11월 예심을 청구한 지 6개월여 만에 상장예비심사 승인을 받았다. IPO를 통해 확보한 자금은 국내외 폐배터리 재활용 공장을 증설하는 데 활용할 계획이다.

국내 1위 배터리 업체인 LG에너지솔루션을 계열사로 둔 LG그룹도 바빠졌다.

LG에너지솔루션은 최근 폐배터리를 재사용해 만든 ‘전기차용 충전 ESS 시스템’을 충북 오창공장에 설치했다. 이 시스템은 10만㎞ 이상 달린 전기택시 배터리로 만든 충전기로 전기차 충전을 할 때 사용된다. 100㎾ 충전기로 전기차 GM 볼트를 1시간가량 충전하면 300㎞를 달릴 수 있다.

삼성처럼 폐배터리 재활용 기업 투자에도 나섰다. LG에너지솔루션은 지난해 말 LG화학과 함께 북미 최대 폐배터리 활용 업체 라이사이클(Li-Cycle) 유상증자에 참여해 지분 2.6%를 확보했다. 두 회사는 2023년부터 10년에 걸쳐 재활용 니켈 2만t을 공급받게 된다.

SK이노베이션은 전기차 폐배터리에서 리튬을 수산화리튬 형태로 추출하는 기술을 개발해 50건 넘는 특허를 보유했다. 2025년 기준 연간 30GWh의 배터리를 재활용해 약 3000억원의 EBITDA(감가상각비 차감 전 영업이익)를 창출할 것으로 기대한다.

 

 

▶폐배터리 시장 가능성 무궁무진

▷2040년 87조 시장으로 급성장

국내 기업들이 폐배터리 리사이클링 사업에 눈독을 들이는 것은 그만큼 성장성이 높기 때문이다. 전기차가 글로벌 시장에 본격 출시된 것은 5년 남짓. 전기차 배터리 수명은 길게 봐도 10년에 못 미치는 만큼 수년 내 폐배터리가 대량으로 쏟아져 나올 전망이다. 실제로 5~6년 이상만 사용해도 폐배터리로 분류된다. 충전, 방전을 거듭할수록 에너지 밀도가 낮아져 주행 거리가 줄어들고 충전 속도도 느려지기 때문이다.

시장조사 업체 SNE리서치에 따르면 글로벌 전기차 폐배터리 재활용 시장은 2025년 3조원에서 2030년 12조원, 2040년 87조원으로 급성장할 전망이다. 폐배터리 재활용 시장 규모가 2025년 글로벌 배터리 수요의 9% 수준인 92GWh에서 2030년 배터리 수요의 14%인 415GWh까지 커질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성장세를 눈여겨본 글로벌 기업들은 일찌감치 폐배터리 시장에 진출했다. 배터리 원재료 가격이 폭등한 상황에서 배터리를 재활용하면 중국 등 배터리 원자재 보유국 의존도를 낮추고 제조원가를 줄일 수 있는 덕분이다.

테슬라, 폭스바겐 등 글로벌 완성차 업체도 폐배터리 연구개발(R&D)에 집중할 계획이다. 테슬라는 ‘2021 임팩트 리포트’를 통해 “앞으로 테슬라의 모든 공장에 배터리 재활용 시설이 도입될 것이다. 새로 광물 원료를 사오는 것보다 폐배터리를 재활용하는 것이 경제적”이라고 강조했다. 전기차 배터리 세계 1위 업체 중국 CATL은 자회사 비럼프를 통해 폐배터리 사업을 키워왔다. 완성차, 배터리 업체뿐 아니라 배터리 원료를 생산하는 광산 업체까지 폐배터리 사업에 관심을 보인다. 스위스 광산 기업 글렌코어는 캐나다 폐배터리 업체 리사이클에 2억달러(약 2550억원)를 투자하기로 했다.

폐배터리 시장이 커지면서 국내 기업도 속속 시장에 뛰어들고 있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 세계 주요국과 비교해 국내 배터리 재활용 산업이 여전히 뒤처져 있다는 우려다.

중국은 배터리 이력 관리는 물론 생산자가 재활용까지 책임지는 ‘생산자 책임제’를 시행 중이다. 원자재별로 니켈, 코발트, 망간은 98%, 리튬은 85%, 기타 희소금속은 97%라는 구체적인 회수율 목표까지 정했다. 배터리에는 각종 중금속과 전해액이 들어가 폐배터리를 매립하면 토양 등 환경오염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EU(유럽연합) 입법기구인 유럽의회도 최근 배터리 원자재 채취부터 제품 생산에 이르기까지 ‘지속 가능한 기준’을 담은 ‘지속 가능한 배터리법’을 통과시켰다. 이 법에는 배터리를 제조할 때 재활용 원료 사용을 의무화하는 내용도 포함됐다. 리튬과 코발트 재활용 비율은 2030년 각각 4%, 12%에서 2035년 10%, 20%로 늘어난다. 폐배터리 회수율은 2023년 45%, 2025년 65%, 2030년 70%로 정했다. 하지만 아직까지 우리나라는 폐배터리 관련 제도가 미비한 데다 폐배터리 기준조차 정립되지 않은 상태다.

“선진국들은 배터리 원재료 채굴, 제련 비용 절감을 위해 일찌감치 배터리 재활용 산업 육성에 나섰다. 중국도 정부 주도로 강력한 재활용 정책을 펼치지만 우리나라 폐배터리 재활용 산업은 여전히 초기 단계다. 폐배터리 기준부터 확실히 정하고, 제대로 된 배터리 회수 인프라를 구축하는 등 폐배터리 산업 육성책이 절실하다.” 김희영 국제무역통상연구원 연구위원의 우려 섞인 진단이다.